어느날 저녁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이 아빠에게 와서 "나 내일부터 학교 안가" 하고 투덜댄다.

왜?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니? 아니... 오늘 학교에서 수학시험 보았는데... 점수가 이상한거야...

내 생각에는 최소 80점을 맞았을 거라 생각했는데 결과는 69점이 나왔어. 근데 69점은 재시험이야. 2문제만 내가 공부하지 않은 문제가 나와서 틀렸고 다른 문제는 모두 완벽하게 적었는데69점을 준거야. 이건 틀림없이 선생님이 나를 싫어해서 그런 거야. 내가 수업시간에 장난을 많이 치니까 아마 나를 미워해서 그런것 같아.​

아들아!

선생님이 너가 미워서 일부러 점수를 적게 주시지는 않았을거야. 차분하게 아빠랑 다시 생각해볼까?​

먼저 너가 모두 맞추었다는 문제 제대로 다시 확인해 보았니?

그럼 당연하지... 주관식 문제지만 정답은 명확하고 중간과정도 정확히 적었어.

이건 내가 확실히 알고있어서 문제보고 1초만에 적었고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이 정답이야. 틀릴 수 없어. 좋아. 그럼 아빠랑 저녁먹고 너가 억울하다고 하는 이번 시험결과에 대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고민해 보자.

​나는 바로 대학교수인 형님에게 달려갔다.

형님. 요즘 대학에서 중간,기말고사 시험점수에 불만이 있는 학생들이 가끔 연구실에 찾아오나요? 그럼. 종종 있지... 그럼 어떻게 응대하세요?

학생이 자기 점수에 의문을 품고 문제를 제기하면 당연히 교수는 의심을 풀어줘야지...

먼저 답안지를 펼쳐놓고 채점기준표와 학생답안지를 체크하면서 왜 너가 이런 점수를 맞았는지 설명해주지. 그리고 "다음부터는 이런 부분을 보완하면 좋을 것 같다"하고 대답해주면 대부분 수긍하고 감사하다고 하고 돌아가지...​

그럼 형님? 체크과정에서 교수가 실수하는 경우는 없나요?

물론 있지. 교수도 사람인데... 그런때는 실수를 시인하고 점수를 정정해주지..

그렇게 하면 좀 교수 권위가 떨어지지 않을까요? 그건 동생이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는거야.

오히려 실수를 시인하고 바로 잡아준다면 그것이 더 권위가 올라가지 않을까?​

저녁을 먹고 아들에게 나는 이야기한다. 아들아!

일단 내일 선생님을 찾아뵙고 어제 시험결과에 대해 생각했던 점수와 차이가 나서 왔다고 하고 다시한번 확인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리는것이 좋겠다. 물론 너가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아빠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사실확인이 가장 중요하지 않겠니?

너가 실수할 수도 있고, 선생님이 실수하실 수도 있으니 다시 한번 확인하고 행동하는 것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빠는 아들이 대견하고 맘에 들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느낄때 혼자 냉가슴앓이를 하는데 아들은 정면돌파를 택했네. 역시 내아들!!!

법언에 "권리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지.

그리고 루돌프 폰 예링의 "권리를 위한 투쟁" 에서 말하듯이 자신의 권리는 가만히 앉아 있으면 누가 주는 것이 아니야. 나의 권리가 침해당했다고 느끼면 정당한 절차를 밟아 투쟁해서 쟁취해야 되는 거야.​

항상 어린애로만 생각했던 아들이 이제 많이 성숙해지고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하면 이를 가만히 있지 않고 쟁취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아들이 너무 대견스러웠다.

이제 내일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다음단계의 행동에 대해 아들과 진지한 토론을 해야겠다.

​여러분은 아들이 이런 고민을 하는 경우 어떻게 상담해 주시나요?

주변 지인분들과 네티즌들에게 자문을 구하였는데 80여분 이상이 글을 읽어주시고 50여분이 개별적으로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간단히 조언을 공유하겠습니다.

①어려운 문제라서 좀더 고민해서 조언하겠다 : 34%

②글쓴이대로 아들을 통해 사실관계를 정확히 확인하겠다 : 55%

③아들과 속상함을 공감해주고 아들에게 실력을 더 키우자고 조언 : 3%

④자녀의 선택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겠다 : 3%

⑤기타의견 : 5%

​구체적 의견을 말씀드리면,

모 선생님의 의견은 초등학교는 글쓴이대로 확인하는것도 좋은 방법이나, 만약 아들이 중고등학교 학생이면 학교생활기록부 작성의 전권이 선생님이시기 때문에 마음은 아프지만 참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과 모 과장님의 의견은 아들의 속상함을 공감하고 달래주며 그것도 자신의 탓일 수 있으니, 그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실력을 더 키우라고 조언한다는 의견,

그리고 모과장님 의견은 자신이 사회생활할때 느꼈던 점을 아들과 공유하며 정면돌파하겠다는 의견을 주셨고 교수님의 자상하신 답변을 선생님도 해주시기를 바라면서 아들에게 선생님 면담을 요청하라고 조언, 모변호사님의 의견은 길게 보고 차근차근 따박따박 가라는 조언,

모교수님 의견은 부모가 정답을 제시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녀 스스로 어떤 사태에 대해서 인식하고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지지해 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할 수 있다고 하셨고 ,

성장은 사태에 대한 외면보다 직면했을때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므로 자녀가 어떤 선택이든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선에서 부모 역할을 제안할 것을 조언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음날 아들이 학교에 다녀와서 아빠에게 선생님을 뵙고 왔다고 한다.

그래, 말씀 잘 드렸니? 예.

​시험점수가 제가 생각했던 것과 달라 여쭤보려고 왔습니다.

그래? 뭐가 궁금하지? 예. 저는 2문제는 모르는 문제라서 틀렸다는데 이의가 없으나, 나머지 문제는 정확하게 적었다고 생각했는데 점수가 생각보다 적게 나온 것 같아서 어떤 점이 틀렸는지 확인하러 왔습니다. 선생임은 정확하게 채점했단다. 채점기준표대로 채점했고 이것에는 전혀 문제가 없단다. 선생님. 그럼 제 답안지 한번 볼 수 있을까요?

좋다. 보거라...... (아들은 얼굴을 찌뿌린다. 아니 어떻게 이런 채점을!!!)

​선생님! (8*9)/2*3=72/2*3=108 이라고 답을 적었는데 왜 6점입니까? 10점이 아니고. 풀이과정도 잘 적었는데...(사실 문제는 다른 문제이나 이해의 편의상)

이렇게 말하고 말하고 싶었으나 엄한 분위기에 압도되고 너무 선생님께 대든다는 생각에 참았다고 한다. 다른 문제의 채점도 비슷했다.

​사실 아들은 수학을 참 잘한다. 요즘 피라미드의 높이도 각도를 구해서 정답을 맞출 정도의 실력으로 아빠인 나도 아들 수학을 가르쳐주기가 버겁다.

​아들은 망연자실하면서도 아직은 어리고 감히 선생님께 대들면서 자기주장을 관철할 정도는 되지 못하고, 집에서도 항상 선생님께 예의를 갖추라고 교육시킨다.

​그리고 “알겠습니다. 잠시나마 제가 오해를 한 것 같아 죄송합니다.” 하고 나왔다고 한다.​

아들은 갈등 해결방법으로 처음에는 경쟁으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할 생각이었으나, 상대가 권력을 많이 가지고 있어 순응전략을 쓴 것 같다.

​아빠인 나는 한참 망설였다. 아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어야할까???

마음같아서는 당장 선생님을 찾아뵙고 따지고 싶었으나, 왠지 망설여진다. 그건 현명한 행동인것 같지는 않고... 설령 아들의 뜻대로 점수가 변경된다 하더라도 혹시 아들에게 학교생활이 문제가 생기지는 아닐까? 그렇다고 잘못된 것을 무작정 참으라고 하기에는 나도 화가나고...​

아들은 아빠 눈치를 살짝 살피면서 아빠 괜찮아! 내가 학원 선생님한테 들었는데 유명한 피타고라스학자 있잖아... 한번은 제자가 피타고라스의 한 이론을 정면반박했는데 그 제자들이 감히 우리 스승님의 이론을 반박해 하면서 암살했다네.​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 말문을 열었다. 아들! 아들이 오늘 한 행동은 현명했던 것 같다.

일단, 점수에 불만이 있어서 선생님을 찾아뵌 것은 참 잘했다. 그래야 문제의 실마리가 풀리고 오해의 소지도 없어지지. 혼자 냉가슴않이만 하면 정확한 사실을 모르채 내 생각만 고집하게 되고 상대방을 무작정 미워하게 된단다.​

둘째, 아빠가 보니까 선생님 채점에 조금은 모순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선생님은 기준에 따라 채점하셨겠지만, 아빠도 조금은 공정한 채점은 아닌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그러나, 일단은 수긍하고 돌아온것도 현명한 행동인 것 같다.​

그러나. 아들이 세상은 유감스럽게도 항상 바르고 올바르게만 돌아가지는 않는구나. 지금은 조금 억울하겠지만 아들은 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등 배워야 할 것도 많고 지금보다 더 억울한 일도 앞으로 많이 만나게 될 거야. 아빠는 아들이 그때마다 참으라는 뜻은 아니야.

아들은 대신 다른 사람이 나로 인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행동했으면 한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내가 통제하기는 쉽지가 않아. 아빠도 아들을 아빠 생각대로 강제하지는 않잖아? 그렇지... 아들 훌훌털고 다시 새롭게 시작하자. 사실은 확인했잖아. 그렇지? 마음 가볍지? ​오늘은 기분도 꿀꿀하니 게임한번 맘놓고 해라. 오늘 공부는 하루 쉬어라....

​아들은 언제 화가 났었는지 까마득히 잊은채 자기방에 가서 친구들을 불러 열심히 온라인게임을 하며 히히덕거린다. 우리 아들 역시 쿨해!!!

마지막으로 "누구나 인생을 알지만 누구도 인생을 모른다"의 저자인 헌법학자 이석연님의 어록으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피해를 입지 않은 자가 피해를 입은 자와 똑같이 분노할때 정의는 실현된다".

이병욱 기자  gumpyi@koter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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