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업계소식
“ 나전칠기 명품금고 1인 1금고 시대를 열다 “
  • 이성순 기자
  • 승인 2019.03.23 11:12
  • 댓글 0

우리 나라의 나전칠기는 고려시대 이후 독자적인 기법으로 발전 전승되어 한때는 세계적인 기술을 자랑할 만큼 우수한 작품을 많이 남겼습니다. 고려 인종때 서긍(徐兢)이 저술한 「고려도경」에 고려 나전칠기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데 "그 기법이 매우 세밀하여 귀하게 여길 만 하고 나전이 장식된 말 안장도 매우 정교하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세련된 귀족문화와 함께 금속선을 꼬아 식물줄기 문양을 장식하고 거북의 등껍질을 얇게갈아 그 뒷면에 붉은 색을 칠한 “대모복체법”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며 조선시대에는 고려 나전칠기와 차별화된 문양을 사용하여 둥글고 넓은 자개의 표면을 망치로 쳐서 바닥에 닿게 하는 “타발법”과 자개를 길고 가늘게 오려 무늬를 형성하는“끊음질” 기법을 통해 대형작업과 회화적 표현이 가능해졌습니다.

특히 조선시대의 나전칠기는 현재까지 큰 영향을 주었으며 조선말기에는 문방구류, 가구류, 여성 용품 류 등의 기물들이 제작되었습니다.

나전칠기에 쓰인 문양도 시대에 따라 구분되는데, 조선조 초기인 15, 16세기의 나전의장은 고려시대의 여운을 남기고 있으나 연당초문(唐草文), 쌍봉문, 보상화문 등 고려시대의 섬세했던 도안이 조방해지고 아울러 표현이 대담하며 활달합니다.

 

17,18세기 경에는 전기의 기법이 다소 쇠퇴하면서 점차 매죽(梅竹), 화조(花鳥) 등의 그림이 두드러지게 많아지고 점차 사군자(四君子)나 십장생(十長生) 등 문인화풍의 문양이 성행되었다. 말기인 19세기에는 자연을 소재로 한 풍경화적인 묘사에 중점을 두어 십장생과 산수문 등이 사실적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칠기가 언제부터 한국인의 생활에서 쓰이기 시작했는가는 확실하지 않으나 중국의 역사서에서 보면 한(漢)대에 칠기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낙랑고분에서 칠기가 출토되고, 신라의 관직제도에 칠전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삼국시대 이전부터 있었다고 추정됩니다. 나전칠기가 완성되기까지는 수 많은 과정을 거칩니다. 먼저 전복의 속껍질을 가는 전복껍질 갈기로부터 시작하여 줄로 모서리를 갈아 부식시키는 줄로 썰기, 칼로 껍질을 가늘게 자르는 상사설기, 실상사를 이어서 칠과 토분을 이겨서 고태 바르기를 하고 밑그림을 그립니다.

그런 다음 활질로 자게에 구멍을 뚫고 실톱으로 무늬를 오리고, 종이 본에 자개를 붙여 인두로 눌러 붙입니다. 종이 본을 떼내고 옷 칠을 다시 합니다. 마무리 단계로 자개에 묻은 옻칠을 닦아 낸 다음 인두로 마름질을 하고 숯과 기름으로 옻칠에 윤기를 내는 광내기를 합니다

이성순 기자  ssleemkt@kotera.or.kr

<저작권자 © 기업정책정보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여백
여백
오늘의 주요뉴스
중소기업기술혁신협회, 제20회 중소기업 기술혁신대전 공동주관
중소기업기술혁신협회, 제20회 중소기업 기술혁신대전 공동주관
”영어의 신“ 99만원 창업의 기회를 갖추고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영어의 신“ 99만원 창업의 기회를 갖추고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여백
Back to Top